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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뉴스=손시훈기자] 2010년 12월 14일, 인천공항 입국장에 한 모녀가 들어섰다. 까만 피부와 곱슬곱슬한 머리카락. 엄마는 완전한 흑인의 모습이지만, 아이의 외모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검지도, 하얗지도 않은 갈색 피부에 오목조목한 이목구비. 5년 전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인 엄마와 한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이 아이의 이름은 ‘지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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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다큐 그날, ‘검은 한국인’ 지현이 사진=MBC

 

6년 전, 지현이의 엄마 크리스티나(29)는 라이베리아에서 승무원 교육을 받던 중 비행기에서 어느 한국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당시 그의 나이는 40대 후반이었지만 결혼에 대해 다소 자유로운 라이베리아에서 나이 차이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고 했다. 한국에서 이혼절차를 밟는 중이라던 남자는 크리스티나와 결혼하고 싶어 했고, 많은 시간을 가족처럼 동고동락하던 중 그녀는 아이를 임신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기 몇 달 전, 미래를 약속했던 남자는 돌아오겠다는 말만 남긴 채 한국으로 떠났고 이후 연락을 끊었다.

 

“그가 너무 원망스러웠죠. 아이한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슬펐어요.
라이베리아 사회는 자유롭지만, 혼혈아의 경우 아빠가 곁에 없으면 그 아이는 남들과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아이가 태어나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기분이 어떻겠어요?” - (크리스티나, 지현의 엄마)

 

세계 6위의 최빈국인 라이베리아에서 대학까지 다닐 만큼 재원이었던 크리스티나. 미래를 위해 결혼 전 출산을 고민하던 그녀에게 아이를 책임지겠으니 걱정 말라고 설득한 것은 남자였다. 그의 말을 굳게 믿고 다니던 학교와 직장까지 포기한 그녀였기에 미혼의 몸으로 홀로 아이의 출산과 양육을 감당해야 하는 현실은 고통이었다. 무엇보다 단 한 번의 연락조차 없는 남자에게 크리스티나는 크게 실망하고 좌절했다. 그러던 중 남자가 한국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 결혼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여자와 아이는 버려진 신세가 됐다.

 

“크리스티나는 너무 실망해서 울고 또 울었어요. 제 첫딸이기에, 저는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저희 가족은 굉장히 단촐해요. 저도 결혼하고 나서 남편이 도망갔거든요” - (쓰리어 델라 코파, 지현이의 외할머니)

 

“그냥 제 딸에게 무슨 이야기라도 해주고 싶었어요.
딸이 3살이 되면서 말을 시작하는데, 왜 전 흑인인가요? 제 아버지는 누구예요?
어디에 있어요? 이런 질문들을 던지면 저는 아무 대답도 해줄 수 없었어요.
아빠가 너의 인생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부끄럽고 슬펐어요” - (크리스티나)

 

2008년 9월, 크리스티나는 아이에게 아버지의 나라인 한국 국적을 안겨주고 싶어 혼자서 한국을 찾았다. 아이 아빠를 찾을 유일한 단서는 그의 여권 사본 한 장. 한국말을 할 줄 모르는 크리스티나에게 한국의 관공서에서 요구하는 각종 행정 절차는 까다롭기 그지없었고, 피부색이 검은 외국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만난 남자는 아이를 자신의 핏줄로 인정해주었지만, 이미 다른 가정을 꾸린 상태. 애초에 3개월을 예상하고 한국을 찾았던 크리스티나는 1년 2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걸려서야 ‘지현’이라는 딸의 이름과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고, 그날 혼자 엎드려 울었다고 했다. 그러나 크리스티나가 라이베리아로 돌아온 이후, 계속 연락을 주기로 약속했던 남자는 또 다시 소식을 끊었다.

 

하염없이 연락을 기다리던 크리스타나는 결국 아이에게 직접 아빠를 보여주기로 결심했다. 딸에게 아빠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아빠가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라면서 점차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는 지현이에게, 단 한번만이라도 자신을 낳아준 아빠를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지현이는 한국을 향한 많은 애정을 갖고 있어요.

이 아이가 말하는 모든 것은 한국과 관련되어 있고, 한국의 모든 것이 좋다고 말해요.
자신은 한국인이니까 한국말을 하고 싶다고 하고, 자기가 한국에 가면 사람들이 좋아해줄 것 같으냐고 저한테 물어보고는 해요” - (크리스티나)

 

아프리카 중서부에 위치한 라이베리아에는 겨울이 없다. 오로지 건기와 우기만이 있을 뿐이다. 난생 처음 한국을 찾은 지현이를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살을 에는 듯한 매서운 추위!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혹독한 추위와 지구 반 바퀴만큼의 시차는 다섯 살 지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괴로운 것이었다. 무척이나 궁금하고 그리웠던 한국이지만, 막상 찾아온 이곳은 라이베리아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낯선 외모의 사람들의 보내오는 호기심어린 시선, 복잡한 지하철, 까마득하게 높은 건물들과 휘황찬란한 거리.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것은 그림책에서만 보던, 하얀 눈으로 뒤덮인 겨울 풍경이었다. 마치 온 세상에 흰색 페인트를 쏟아놓은 것 같다며, 지현이는 손이 어는 줄도 모르고 쉴 새 없이 눈을 만지작거렸다.

 

처음에는 낯설어서 피하고 싶었지만, 지현이는 점점 더 한국이 좋아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처음 만난 지현이를 가족처럼 살갑게 대해주는 좋은 사람들이 있고, 무엇보다 이곳에는 지현이가 그렇게도 보고 싶어하는 아빠가 있기 때문이다.

 

입국한 지 일주일 째. 지현이의 아빠는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어쩌면 전화번호를 바꾼 것인지도 모른다. 오래된 주소가 적힌 종이 한 장만을 달랑 들고서 모녀는 직접 길을 나섰다. 한손에는 커다란 짐 가방을, 다른 한손에는 아이의 손을 꼭 쥔 채 복잡한 서울 시내를 헤매는 크리스티나. 말은 통하지 않고, 날카로운 추위는 온몸을 파고든다. 어렵사리 물어 찾아간 남자의 주소지는 이미 주인이 바뀐 지 오래. 관공서에서는 지현이의 나이가 너무 어려서 법적으로 아빠의 주민등록 주소를 열람할 수 없다고 했다. 계속되는 난관에 서서히 지쳐가는 두 사람. 지현이의 아빠는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 것일까?

지현이는 과연 아빠를 만날 수 있는 것일까?

 

드디어 꿈에 그리던 아빠를 만나게 될 그날, 지현이는 오래전에 준비해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또박또박 한국말로 인사를 건넬 것이다. 그래서 매일 밤 이 말을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보고 싶었어요. 사랑해요. 아빠” (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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